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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01 노동절 본문
올해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창립된 지 100주년 되는 해.
제네바에 위치한 ILO의 첫 청사 건물 공사를 시작할 때 놓은 세 개의 초석에는 라틴어로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Si vis pacem, cole justitiam"
“평화를 원하거든 정의를 일구라.”
노사정 삼자주의의 기초 위에 노동의 정의를 일굼으로써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정문에는 3개의 자물쇠가 설치되었다. 이 열쇠는 각각 정부, 사용자, 노동자를 뜻하며 3개의 열쇠를 가진 주체들이 함께 할 때 사회 정의의 문이 열린다는 의미다. 초석과 함께 전 세계 노동법·노동기준을 개선하기 위한 노사정 삼자 주의의 기본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노동자는 한 번도 이 열쇠를 가져본 적이 없다. 이 땅에 노동자가 생겨난 이래 현재까지 지속되는 투쟁은 노동자 몫의 초석과 열쇠를 쟁취하려는 노력이다.
한국에서는 하루에 평균 3명의 건설노동자들이 사망한다. 단돈 10만 원이면 살 안전바가 없어 용광로 근처에서 일하다 용광로에 빠져 죽은 사람이 있다. 배기장치, 안전장비의 지급 없이 메탄올로 작업을 하다 실명한 사람들이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태안발전소에서 내 또래 노동자가 부족한 인력, 과중한 업무, 그리고 안전장비의 부족으로 처참하게 사망했다.
하루 평균 5-6명. 우리나라는 산재로 인한 사망률(12.8%)이 OECD 평균(6.4%)의 두 배에 이르는 압도적 1위다. 노동권은 인권이다.
한국의 법정근로시간은 일 8시간, 주 40시간, 연장 12시간. 하지만 지금껏 일주일을 '휴일을 제외한 5일'로 해석해 주 68시간 노동의 근거로 삼았다. 결국 작년에서야 '일주일은 7일이다'라는 규정을 신설해 정상적으로 근로시간을 적용했다.
이렇게 근로시간을 적용하니 이제 경영계에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이하 탄력근로제)'를 끊임없이 주문한다.
탄력근로제란 무엇인가?
탄력근로제는 '주 7일 52시간 노동'을 지킬 필요 없이 일정 기간을 정해두고 그 기간 동안의 평균 노동시간이 주 52시간 이내라면 불법이 아니라는 법이다. 한마디로 첫 주에는 70시간 일해도, 둘째 주에 10시간 일하게 하면 평균 주 40시간 근무니까 괜찮다고 해주는 법이다.
문제는 앞서 말한 이 '기간'을 6개월로 늘리려고 한다는것. 이러면 21주간 주 64시간을 일하는 것이 합법이 되는데, 이 근로시간은 죽으면 과로사로 인정되는 시간이다. 즉 과로사할 만큼의 일을 합법으로 시킬 수 있다.
또한 이런 식의 근무는 주별 근로시간만 정해져 있고 그 날 근로시간은 최소 2주 전에서야 알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인간이 자기 생활을 통제할 수 없어 큰 우울감 유발하게 되어 심각한 과로 우울증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연장 근무를 하면 수당으로 150%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탄력근로제를 적용하면 근로 시간을 평균으로 퉁쳐서 연장수당을 줄 의무도 없어진다.
결국 탄력근로제는 직원 고용을 최소화하고 시간외근무수당을 안 주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
노동자의 근로 시간을 주 52시간 이하로 제한해둔 법의 취지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주 52시간 이상 일하면 과로사 위험이 높아진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위해 돈 벌러 나왔다가 죽을 수 있다. 인간은 대출 당겨 쓰듯이 다음 주 체력을 이번 주에 미리 땡겨쓸 수가 없다.
일이 많아서 주52시간을 지킬 수 없다고? 그럼 한 사람에게 주 7~80시간씩 일을 시킬 궁리를 할 것이 아니라 그냥 두 사람을 고용하면 된다. 2명을 고용해서 2명의 4대 보험료와 복지비용을 지출하기 싫으면, 1명이 힘들게 일한 만큼 시간 외 수당이라도 줘야 하는데, 도둑놈 심보의 사용자들은 그것도 싫은 거다.
일주일에 40시간이 아니라 '정해진 기간 내의 노동시간이 평균적으로 40시간이면 되는 거 아니냐, 이번 주에 70시간 일했어도 다음 주에 10시간만 일하게 해 주면 쌤쌤 아니냐'라는 생각은 사람을 기계 취급하는 멍청한 소리일 뿐이다.
이번 노동절 구호인 《ILO 핵심협약 비준》
ILO 핵심협약이란 1998년에 ILO가 “노동에서의 기본원칙 및 권리에 관한 국제노동기구 선언과 그 후속조치”에서 제시한 4가지 원칙, 즉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아동노동 금지, 균등대우와 관련되는 8개 협약을 말한다. 이 중 한국은 이 협약 내용 중 절반이 비준조차 안 되어 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문재인 정권의 선거 공약이었으나 지금은 비준하려는 척조차 안 하고 있다.
'근로자의 날'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 말은 박정희 때 도입한 말. 임금을 받고 일한다는 뜻의 노동자와 달리 '열심히, 부지런히 일한다'는 고용자 시각의 말.
5월 1일. 오늘은 노동절이다.